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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사] 간병사의 이야기
  • 분류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4-05-20 10:47:30
  • 조회수
    2431

나는 쌍둥이 딸아이 둘과 밑으로 사내아이를 두고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87년 우리의 생계가 달려있는 세탁소에 불이 나기 전까지는....

나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전신화상으로 인해 시작된 병원 생활은 너무나 힘든 하루하루 사투의 연장이었다. 대구 의료원에서의 병원 생활을 하면서 3번의 이식수술을 하는 동안 버텨내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식들에 대한 생각에서였다.

평상시 건강해서 병원 문턱도 넘어 보지 않았던 나에게 있어 3년의 투병생활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던 시기였지만,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과 ‘건강을 회복해 다시 병원 밖을 나선다면 누군가를 위해, 아니 환자들을 위해 나의 일생을 바쳐야겠다.’ 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 불에 타버린 모든 것들을 원래대로 되돌리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화상흉터는 남아있어도 건강한 육신이 있으니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마음을 다잡으며 열심히 살았고, 조금은 안정을 찾게 되었을 무렵 다시 어려움은 찾아왔다. 믿었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늒미이었고 다시금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

좌절감과 배신감에 견뎌내기 힘이 들었지만, 나의 곁에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아이들을 위해 참아야만 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이혼은 할 수 없었다.

결국 5년이 지난 후인, 작년 이혼을 하게 되고 아이들과 나는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그무렵, 대구 여성노동자회 소속으로 가사 도우미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고, 전처럼 생기를 찾기 어려웟다. 그러나 내게 맡겨진 일에 있어 만큼은 최선을 다하였다.

그 무렵, 간병봉사단의 일을 제안 받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나의 결심과 약속들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당시 아직 약물 치료 중이었던 나는, 몸이 제대로 따줄지 몹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 또한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내게 있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간병봉사자로 일하면서 몸이 아프지 않은 것이다.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거뜬하게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있었고, 쉬는 날에는 환자를 위해 시장에 가고, 식사할 때 도울 수 있는 턱받이를 만들고 , 침상목욕을 위한 수건을 만들어 다른 간병봉사자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간병활동을 종료했던 환자를 찾아가 보며, 식사를 못하시는 환자를 위해 미숫가루를 만들어서 드리는 등 화낮들을 위해 내가 무언가 해드리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내 손이 자랑스러웠고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그저 절망스럽기 이를 데 없던 내 삶에 간병봉사자의 일은 참으로 나게 가치 있고 보람된 이이었다. 그리고 찾아가는 병원마다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며 간호과장님이 직접 식사를 챙기시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다. ‘누군가 내 작은 힘에 고마워한다는 것에도 행복하지만, 내가 이루어 놓은 것 보다 더 많은 칭찬이 돌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에 행복함을 느꼈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 할 수 있는 데에는 여러 환자분들과의 이야기가 커다란 몫을 했다고 본다. 그 분들의 삶을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연민의 정을 쌓아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하루하루 그 분들과 시간을 함께 하면 할수록 나는 나게 있는 무언가를 더 건네 주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이번에 만난 환자(남, 59세)는 별다른 직업이 없이 살아오던 중 9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도 방황하다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었다.

보살펴 주는 살마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던 그는 어떤 목사님의 인도로 강원도 횡성에서 살다가 직장암으로 4차례에 걸쳐 수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다시금 암이 전이가 되어 동산의료원 호스피스병동에 입원ㄴ해 있던 환자였다.

첫날, 내가 만난 그 환자 분은 이전엔 어느 누구에게도 간병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햇다.

간호산미과 함께 환자 분의 몸을 씻겨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그 환자분은 내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환자분은 ‘이제까지 이러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시며 가족이상으로 대해주는 내게 늘 감사해하셨다. 그리고 ‘병이 나으면 나도 나가서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겟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교보다솜이 간병봉사단’ 에 감사해 하시기에 ‘병원을 나가시게 되면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다’고 내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왠지 체념을 해버린 듯한 그분의 말씀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미 부종이 다리로 전이 되어 버려 누르면 터질 것 같은 상태여서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는 그분이 ‘오래사시기는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분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대접받지 못했던 그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벗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오늘도 나는 여러 환자 분들을 도우며, 절망스럽게만 느껴졌던 나의 지난날의 고통을 말끔히 치유해나갈 것이다.

 

박옥연 간병사